목록전체 글 (117)
생각의 거미줄
이른 아침,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몽유병 환자처럼 거실을 벗어나 마당으로 향한다. 한 손엔 우산을 받쳐 든 채 한 손으로 토마토 곁순 몇 개를 따고, 텃밭들 사이로 올라 온 풀을 뽑았다. 집 앞 쪽 음지 구역에 무성한 풀들을 멀찍이 보았다. 장마 시즌에 접어드니 매년 그랬던 것처럼 올 해도 무성해서 속으로 투정부리듯 말한다. '한 해 걸러서 무성할 수는 없는 거니? 그런 거니?‘ 그런데 망원렌즈로 줌인(zoom-in)하듯이 가까이 다가가 풀 군락을 보았을 때 저으기 놀라고야 말았다. 풀의 가짓수가 예상 밖으로 많고 각각의 풀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그리고 군락의 형성 중 모종의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모지?' '이걸 뽑아야 돼 말아야 돼?' '일단, 들어가자.' 카메라에 담..
'원조'라는 이름이 붙은, 객사 인근 냉면집을 다시 찾지는 않을 것 같다. 계절을 고려하여 열무가 자동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괜찮은데 먹는 내내 군둥내를-미진하지만 분명히-맡아야 했고 달달하고 짭짤했다. 반대편으로 차를 몰아 전라감영에 당도하니 충분히 야행이 가능한 시간임에도 출입 통제 푯말을 보아야 했다. 한옥마을로 차를 돌려 꽈배기 집을 헛되이 탐색하다가 예전에 본 기억이 있어서 다시 객사 쪽으로 되돌아갔는데 모르는 새 폐점이 되었는지 매장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전엔 의례적인 축구를 하고, 오후엔 낮잠을 잤으므로, 냉면이 맛이 있었더라면, 전라감영이 문을 열었더라면, 꽈배기 집이 영업을 했더라면 나름 이상적인 하루였을 것이다. 오전의 흥분과 오후의 평온함은 이후에 있을 '머피의 법칙'에 대하..
한 여름 밤, 열풍은 잦아들지라도 습한 기운은 여전하기에 거실이 침실의 기능을 맡기도 한다. 여섯 시도 되지 않았지만 밖은 이미 환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턱 앉으니 거실 한 켠에 엎드려 있던 보리가 내 쪽으로 몸을 홱 돌린다. 아빠, 밖에 나가서 산책할 시간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보리와 함께 한 산책 길에서 나는 세 종류의 풀을 주워들었고, 이들은 일요일 아침 식탁의 한쪽 모서리를 점유하고 있다. 화병 앞에 놓인 작은 병에는 미천하게 남은 수제 딸기잼이 담겨 있다. 초여름녘, 텃밭에서 마지막으로 거두어 들인 딸기 한 줌을 브라운 슈가 한 수저 곁들여 냄비에 넣고 조린 것인데, 딸기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슈가 양이 과했는지 시럽 맛이 난다. 말하기 복잡한 사정으로 인하여 요즘 나는 ..
매월 지출되고 있던 항목 하나를 삭제함으로써 얻은 차액을 종이 신문 구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에 속하지 않았지만 구독의 효과 중 하나는 대학 시절 기억의 소환이었다. 학교 근처 가판대에서 신문 한 부 달랑 구입한 후 학교로 들어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벤치에 앉아 신문을 펼치는 일은 당시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인들의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누군가 그러고 있으면 역시나 자판기 커피를 입에 문 누군가가 곧이어 들러붙었고 어떤 때에는 신문 구매자는 자취를 감춘 채 낱장 신문을 손에 쥔 빈대들만 벤치에 득실거리기도 하였다. 도대체 교회는 뭘 하는 동네냐, 목사들은 다 먹사야, 라는 볼멘소리를 무색하게 만드는 해당 산업 내 실천가들이 있는 것처럼, 도대체 언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