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셨도다"

2015.02.28 01:41

이번 주일 예배의 초대의 말씀(총회 공동성서정과에 따라), 시편 22편을 읽다가, 24절에서 갸우뚱.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개역개정)

 

곤고한 자의 곤고를 싫어하지 아니한다? 싫어하지 않는다, 의 주체는 하나님일테고... 곤고라는 표현이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느낌이 다가오지 않는데... 공동번역을 보니 아하. 

 

"내가 괴로와 울부짖을 때 귀찮다, 성가시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공동번역)

 

누군가 내게 뭘 간절히 요청할 때 그의 사정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의 말이 귀찮고 성가시게 들릴 때가 종종 있는데, 하나님의 귀는 전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참으로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인간적인(inhumane) 면모!! 마음이 맑다는 뜻일 터. 마음이 텅 비어 있으면 아무 것도 성가시지 않게 들리나 마음에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들어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성가시게 들리니. 그래서 팔복의 첫 마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공동번역의 옮김이 훨씬 와 닿는다 싶은데, 그 다음 구절은 전세가 역전. 개역개정에서는 24절의 그 다음 문장을 그대로 살렸으나 공동번역은 탈락시켰다. 종교 체험에 대한 매우 고전적인 표현이면서도 심리학적 차원에서 고려했을 때 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개역개정)

 

"들으셨도다." 경청. 소통. 관계. 공감. 영성. 생태적. 마음이 깨끗함(purity in heart). 긴 전깃줄에 발가락을 걸친 여러 마리의 참새들처럼 동일어군에 속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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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리이다" (시 27:10)

무슨 일로 그의 부모는 그를 버렸을까. 몹쓸 병이 걸려서? 허락하지 않은 결혼을 강행한 탓에? 부모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짓을 해서? 부모를 떠나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부모와 대등한 관계에서 살아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과제일진대 그는 그 과제의 수행의 절호의 기회를 부여받은 것일까. 부모에게 버려짐을 통해 그는 인간의 인간됨의 심연/신비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사태는 부모에게 버려짐의 효과일까.

그렇다 할지라도 부모에게 버려진 건 그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가혹한 일일지도. 그에게 하나님은 부모의 대체자(surrogate-)이고 대체부모인 하나님에게까지 버려진다면 그건... 상상하고 싶지 않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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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들(권력가들, 공동번역)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편 146편 3-4절)

 

권력을 좋아하여 정치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자기-생존 내지는 자기-실현의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놀이일 터. 그러므로 정치의 손길을 통해 생존과 자기-실현을 보장받아야 하는 가난하고 눌린 자들은 그들을 의지할 수도 그들의 생각(plans, NIV)을 믿을 수도 없으니 그들은 오직 자기의 영혼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힘과 생각을 의지하여 삶의 터전과 문화를 창조해야 나가야 하느니.

 

"정의로 심판하시고... 비굴한 자들을 일으시키시며...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시는" (6-9절) 하나님의 정치의 담지자는, 예를 들자면, 기민과 은폐의 놀이를 즐기는 국가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애도하고 스스로 보상을 내리는 세월호의 유가족들/동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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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뼈에 닿으면?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시편 42편 10절)

 

대적(혹은 원수, my foes (NIV)). 초자아(superego)의 역할을 자처하는 이 자는 때때로 험상궂은, 찡그린, 짜증나는 표정으로 영혼을 위협하는데 그 위협이 칼로 뼈를 찌르는 듯하다. 영혼은 상하고 불안하고 낙심하며 심지어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도록 몰아가게 된다. 그러나 대적이란 작자는 결국 위협꾼에 지나지 않고 그러므로 그는 허풍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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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장 34절)


이 말씀의 청중이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에게 자기-부인은 착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으로부터 풀려나는 일일 터. 다시 말하면 초자아(부모, 절대군주 하나님)의 명령에 NO 라고 말하는 행위-말썽꾸러기나 천덕꾸러기처럼-그것이 자기-부인이리라.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의 정신구조는 자기-부인과 외견상 유사해보이는 자기-증오 혹은 자기-경멸. 수치적 자아의 본래 자리이기도 할 자기-증오의 온전한 구현은 가룟 유다의 말로(末路).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를 공격하는 것일까.


그런데 어찌 보면 착한 아이 컴플렉스 소유자에게 십자가는 이미 지워져있다. 그의 삶과 정신이 이미 십자가. 누군가에 의해서 부과된 빚을 갚기 위한 그/그녀의 분투는 처절하고 안타깝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이후의 예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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