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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미줄

관상기도와 관상적 삶 본문

칼럼/아가페크리스챤치유센터 계간지

관상기도와 관상적 삶

夜虹 2022. 7. 31. 12:51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사람이지” 하나의 주제를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표현한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대형극장주인인 한 60대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허풍떨듯이 하는 말이다. 참 재미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운 일주일’이 된 이유는 좋은 일들이 마구 생겨서가 아니라 오히려 좋지 않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 60대 남자의 말대로, 각각의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이 ‘볼’ 줄 아는 눈이 열려가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복이요 능력이다. ‘봄’으로 알게 되고 ‘봄’으로 사랑하게 된다. ‘봄’으로 치유하게 되고 ‘봄’으로 회복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보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산다. 보지 않고, 대신,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자신을 놓아둔 채 그것에 사로잡혀서 산다. 눈으로 보지 않고 생각으로 본다. 자신의 고정관념, 선입견, 기대와 기준으로 사람과 사물을 본다. 또는 과거의 상처받은 감정으로 본다. 보기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기는 보지만 있는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관계의 어그러짐은 ‘봄’의 능력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부부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결과이다. 상대방의 얼굴이 아니면 등이라도 용기를 내어 들여다보라, 어찌 연민과 용서의 감정이 싹트지 않겠는가. 실컷 싸우고도 틈을 내어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다 볼 수 있으면 그 싸움은 칼로 물베기인 것이다. 보아도 있는그대로 진짜로 보아야 한다. 보는 척 흉내내어서도 안 되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내 기준과 기대에 사로잡혀서 보아서도 아니된다. 있는그대로 보아야 참으로 알게 된다.

모든 관계의 기본은 ‘봄’이다. 어그러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양방이 서로를 주의깊게 그리고 정성을 다해 보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런 고로 ‘봄’의 능력이야말로 행복이다. 예수께서는 행복하게 사셨다. 예수께서는 있는그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계셨기 때문이다. 참으로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다.

어느 날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을 때, 사탄이 예수께 달려와 꼬드겼다.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해 보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사탄에게 돌은 돌이 아니라 떡이다. 그러나 예수에게 돌은 그저 돌일 뿐이다. 돌이 빵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양식인데, 돌을 빵으로 만들 하등의 이유도 필요도 없다.

입으로 들어가는 일체를 끊으며 하나님을 찾았던 예수께서는 맑은 눈을 선물로 받아, 땅바닥의 돌을 있는그대로의 돌로 볼 수 있는 “관상” (contemplation, 헬라어로는 theoria)의 능력을 회복하셨다.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게 능력이 아니라 돌을 돌로 볼 줄 아는 게 능력인 것이다. 이 능력으로 예수께서는 병자를 만지셨다. 이 능력으로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집에 들어가셨다. 병자라는 생각, 세리와 죄인이라는 생각, 그 생각을 예수께서는 끊어버리셨다. 그 생각이 끊어지니 모든 이들이 사랑의 햇빛을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라고 알려진 이것은 기도의 방법이면서 동시에 생활의 자세이다. 관상기도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지금-여기(here and now)를 느끼고 보는 것이다. 지금-여기에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와 현존을 느끼고 보는 것이다. 관상적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지금-여기를 사는 것이다. 기대, 고정관념, 편견을 알아차려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지금-여기에서 ‘봄’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생각의 세계가 아닌 봄의 세계를 사는 것이다. 예수의 눈과 귀를 가져 예수처럼 사는 것이다. 이것이 관상적인 삶이다.

 

아가페크리스찬치유센터 계간지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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