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생각의 거미줄

매 본문

Miscellany

夜虹 2022. 8. 4. 23:41

매에 매혹된 것은 오래전 우연이었다. 자신의 몸의 길이보다 더 긴 날개를 펼치고 아무런 소리도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허공을 난다는 건 아무래도 비상한 일이다. 매가 나는 광경을 언어에 담기 어려운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세 마리의 매였던 것 같은데, 잠시 후 한 마리가 더 보였고, 한참 뒤에는 보다 더 가까운 쪽으로부터 다른 놈이 시각의 스크린 안으로 들어오는 통에, 각기 다른 아우라를 뽐내는 다섯 마리가 무질서의 질서를 따라 일말의 중단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비를 보지는 못했으니 충분히 우수(雨水)답지는 못한 날, 그래도 하늘은 충분히 흐릿하여 퍽 아쉽지는 않은 가운데, 태양 빛은 티 없이 밝은 게 아니라 흐릿하게 눈부셨으니, 그래서 힐데가르트는 '살아있는 빛의 그림자'(umbra viventis lucis) 라고 불렀던 것일까.

 

매 언니들이 산 너머로 멀어져 가므로 나 역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보리를 집에 데려다 놓은 후 핸드폰을 가지고 신비 관측소로 되돌아 와 버튼을 누른다. 관측자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언니들은 카메라에 잡혀주긴 했으나 관측자의 머뭇거림까지 기다려주지는 않고-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이므로-산 너머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페이스북 2022.2.19

'Miscellan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아이  (0) 2022.08.04
영원회귀  (0) 2022.08.04
폭군의 위용  (0) 2022.08.04
표정  (0) 2022.08.04
캐롤  (0) 2022.08.0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