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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미줄

깨어 있는다 본문

바람의 말

깨어 있는다

夜虹 2023. 5. 30. 07:39

마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머문다, 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1) 두 개의 구절, 마음 안 과 하나님의 현존은 하나이기 때문이고, 2) 하나님의 현존은 머물 수 있는 게 아니라 깨어 있으면서 바라보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다, 라는 말이 기도와 명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적절하다는 것을 오늘 아침 고요 가운데 머물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발견하였다. 묵상의 포인트를 정하고 거기에 머무르려고 하는 행위, 그것을 유념적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유념적 길은 종종 그 방향을 무념적 길에 내주어야 한다. 유념적 길이 회피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감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요, 존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엔 어떤 요소도(지성, 의지와 정동, 기억) 배제되지도 강요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에 대한 관찰(의식)이 텅빈 우주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슬픔과 권태 그리고 분노가 자극될 때, 거기엔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므로, 회피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고통 속의 쾌락, 쾌락 속의 고통이 여실하게 된다. 음식을 먹거나, 날이 밝거나, 혹은 시간이 흐르면 슬픔과 권태 그리고 분노 혹은 그러한 종류의 생각들은 분산된다. 깨어 있을 때 아무 것도 회피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대면하고 있다. 때로는 실재를 초청한다. 

 

나 같은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슬픔과 권태와 분노의 틈 사이에서 사유하는 것 외에 그것과 함께 친밀함을 구가하는 방법이 없다. 슬픔과 권태와 분노가 없다면 현재의 나는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나는 이것들 사이에서 의미를 발생시켜야 한다. 현재까지 강의가 그러한 의미 발생의 장소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기도 하고, 몇 가지 점에서 강의 교과목들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부추기고 있는 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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