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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미줄
기숙사에 머물다가 금의환향하듯 돌아온 딸래미가 저녁식탁에서 묻는다. 아빠, 크리스마스 추리 안 한 거야? 너랑 나랑 같이 하기로 했었쟎아? 그런 걸 뭘 같이 해? 폭군의 위용으로 마지막 말을 던지고 학원 간다며 나가는 딸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창고에서 추리 박스를 꺼내와서 5분만에 추리완성하고 보리 데려와 찰칵. 페이스북 2021.12.24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며 노는 형제들로부터 거리를 둔 채 엎드려 있었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난 날, 그렇게 우리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기꺼이 마음을 내주었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페이스북 2021.12.22
아내가 틀어 놓은 합창 캐롤이 이곳 다락에까지 뭉근하게 올라온다. 학술대회에 제출할 글의 뚜껑을 미처 열지 못한 채 수 일을 보내는데 캐롤 소리가 자극한 성탄의 향수에 취해 또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다. 페이스북 2021.12.18
삶을 물처럼 욕망해야 하고 죽음을 포도주처럼 마셔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책에 나오는 G.K. 체스터턴의 말이 나의 정신머리 한 귀퉁이 꽂혔을 때 나는 이 말이 종종 상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머지 않아 시작하게 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에 관한 일련의 강의들을 맵핑하던 차 다다른 에크하르트 톨레의 프란치스코에 관한 3분 유튜브 영상이 체스터턴의 이 말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나는 짧지 않았던 맵핑 과정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고 있다. 피해의식 혹은 희생양 이데올로기의 작동이 동반하는 온갖 번민이 'I=something'이라는 도식(A)과 평행을 이룬다면, 호모 사케르(나병환자)보다 나을 게 없는 자신을 발견한 이후 호모 사케르(십자가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